안녕하세요. 박소현 변리사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AI 회사의 이름을, 정작 그 회사가 유럽에서는 상표로 등록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으셨나요?
2026년 7월 15일, 유럽연합 일반법원(General Court)은 챗GPT를 만든 오픈에이아이(OpenAI)의 문자상표 ‘OPENAI’가 인공지능 관련 상품·서비스에 대해 식별력이 없다고 보아 EUIPO(유럽연합 지식재산청)의 거절결정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Case T-555/25).
먼저 정확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전부 거절된 것은 아닙니다. 출원은 9류·38류·42류·45류에 걸쳐 있었는데, 통신 서비스(38류) 쪽은 살아남고 정작 회사의 본업인 소프트웨어(9류)와 과학·기술·클라우드 서비스(42류) 그리고 45류가 막혔습니다. 브랜드의 심장부만 정확히 도려낸 셈이죠.
수억 명이 매일 쓰는 이름이 상표로는 보호받지 못한다니 언뜻 납득이 가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이 판결은 상표법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꺼내 놓습니다. “상표는 도대체 무엇을 보호하는 제도인가.” 오늘은 이 사건을 통해 AI 시대 브랜드 네이밍에서 우리 기업이 반드시 점검해야 할 지점을 짚어보겠습니다.
1. 상표는 ‘무엇인지’가 아니라 ‘누가 만들었는지’를 보호합니다
많은 분들이 상표를 ‘내 브랜드에 대한 독점권’으로 생각하시는데, 정확히는 조금 다릅니다. 상표의 본질적 기능은 소비자가 ‘누가 만든 상품인가’를 식별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상표는 상품의 출처(origin)를 가리키는 이정표이지, 상품이 무엇인지(what)를 설명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표장이 상품의 성질을 그대로 설명하는 말이라면, 소비자는 그것을 ‘출처 표시’가 아니라 ‘상품 설명’으로 받아들입니다. 법원은 ‘OPENAI’를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open(열린·개방형)과 AI(인공지능)로 나누어 읽고, 소프트웨어와 AI 서비스 맥락에서 이는 곧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인공지능’, ‘오픈소스 기반 인공지능’, ‘투명하게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이라는 상품의 성질을 떠올리게 한다고 보았습니다.
붙여 썼다는 점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하이픈이나 띄어쓰기가 없다는 사정만으로는 그 표장이 “각 부분의 단순한 합을 충분히 벗어난 인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근거 조항은 EU상표규정 제7조 제1항 (c), 기술적(記述的) 표장의 거절이유입니다.
우리 상표법도 정확히 같은 원리 위에 서 있습니다. 상표법 제33조 제1항 제3호는 상품의 산지·품질·효능·용도 등 성질을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은 등록받을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Creamy’를 요구르트에, ‘빠른배송’을 택배 서비스에 등록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말은 특정인이 독점하면 안 되고, 모든 경쟁자가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하니까요.
2. 설명적인 단어도 두 개를 붙이면 등록될까요?
유럽 판례의 변천사가 이 질문에 답을 줍니다.
2001년 BABY-DRY 사건(C-383/99)에서 유럽사법재판소는 기저귀에 대해 ‘baby’와 ‘dry’의 결합이 일상 영어에서는 쓰지 않는 이례적 어순이라며 식별력을 인정했습니다. 한때는 ‘설명적인 단어라도 조금만 색다르게 조합하면 등록된다’는 기대가 있었죠.
그러나 2003년 DOUBLEMINT 사건(C-191/01 P)에서 법원은 훨씬 엄격한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원칙이 이번 OPENAI 판결에도 그대로 적용됐습니다.
표장이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더라도, 그중 하나의 합리적 해석만 상품의 성질을 설명하면 등록은 거절된다.
즉 “우리 이름은 다른 뜻으로도 읽힌다”는 항변은 통하지 않습니다. 설명적으로 읽힐 여지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늘날의 기준은 ‘문법적으로 새로운 조어인가’가 아니라 ‘평균적 소비자가 그 의미를 즉각 알아차리는가’입니다.
우리 대법원도 기술적 표장 해당 여부를 지정상품과의 관계에서 일반 수요자의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일관된 입장이어서, 결이 매우 비슷합니다. 같은 단어라도 어떤 상품에 붙느냐에 따라 결론이 갈린다는 뜻이기도 하죠. ‘APPLE’이 컴퓨터에는 강력한 상표지만 사과 판매업에는 등록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3. 유명하면 봐주지 않나요? — 명성과 식별력은 다릅니다
이 판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법원이 오픈에이아이의 어마어마한 명성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전 세계가 아는 브랜드, 수억 명의 사용자, 매일 쏟아지는 언론 보도. 그럼에도 결과는 거절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상표법의 정교한 설계가 깔려 있습니다. 본래적 식별력과 사용에 의한 식별력은 서로 다른 트랙이라는 것이죠. 법원은 명성이 기술적 표장이라는 성질 자체를 없애 주지는 못한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명성은 어디까지나 ‘사실 상태’이고, 식별력은 별도로 입증해야 하는 ‘법적 결론’입니다.
만약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설명적 단어를 독점하게 해준다면, 어떤 분야든 가장 먼저 성공한 기업이 그 산업의 ‘언어’ 자체를 선점하는 결과가 벌어집니다. AI 업계에서 ‘open’과 ‘AI’를 한 회사가 묶어 가져간다고 생각해 보시면 왜 이런 원칙이 필요한지 바로 이해되실 겁니다.
4. 그렇다면 오픈에이아이는 이대로 끝난 걸까요?
아닙니다. 그리고 이 지점이 실무적으로 가장 중요합니다.
이번 판결이 판단한 것은 ‘본래 식별력이 있느냐'(제7조 제1항 (c))까지입니다. 사용에 의한 식별력 취득(제7조 제3항)은 이번 소송의 심판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즉 “우리는 오래 대량으로 써서 이미 소비자가 우리 회사를 가리키는 말로 인식한다”는 주장은 아직 별도로 다툴 여지가 남아 있고, CJEU 상고라는 길도 있습니다.
다만 유럽에서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인정받는 문턱은 상당히 높습니다. EU 전역에 걸쳐 소비자가 그 표장을 특정 기업의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을 나라별 자료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픈에이아이 정도의 회사에게도 결코 가벼운 부담이 아닙니다.
우리 상표법에도 같은 구조의 안전장치가 있습니다. 제33조 제2항은 식별력 없는 표장이라도 사용에 의해 식별력을 취득하면 예외적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하고 있죠. 다만 장기간·대량의 사용, 광고 집행, 시장 인지도에 관한 충실한 증거를 요구하는 높은 문턱이라는 점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5. AI 기업 브랜드 네이밍, 지금 무엇을 점검해야 할까요?
이 판결은 한 회사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요즘 기업들은 Open, Smart, Auto, Vision, Generative, Deep, Neural, AI 같은 단어를 브랜드에 즐겨 넣습니다. 이런 용어가 낯설던 시절에는 신선한 식별력을 가졌을지 몰라도, 대중의 AI 이해가 깊어질수록 ‘설명적 표현’으로 읽히는 영역이 넓어집니다. 오늘 독특해 보이는 이름이 내일은 등록 불가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무에서 제가 강조드리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 네이밍 유형 | 예 | 상표 관점 평가 |
|---|---|---|
| 설명형 | OpenAI, SmartVision, AutoDeep | 소비자에게 친절하지만 등록 리스크 큼. 시간이 갈수록 더 위험해짐 |
| 암시형 | Netflix, Coupang | 연상은 되지만 직접 설명은 아님. 실무상 가장 무난한 절충 |
| 조어·창작형 | Anthropic, Mistral, Cohere | 초기 인지 비용은 크지만 가장 강한 상표가 됨 |
첫째, 설명적 AI 용어에 기댄 네이밍은 등록 리스크가 크고 점점 커집니다. 출원 시점에는 통과했더라도, 나중에 경쟁사가 무효심판을 걸어올 여지가 남습니다.
둘째, 이미 설명적 이름으로 명성을 쌓았다면 지금부터 증거를 모으세요. 사용 개시일, 매출, 광고 집행 내역, 언론 보도, 소비자 인식 조사. 사용에 의한 식별력은 결국 이 자료들의 축적으로 입증됩니다. 분쟁이 터진 뒤에 만들 수 있는 자료가 아닙니다.
셋째, 로고·색상·도형과 결합한 결합상표를 함께 확보하세요. 문자만으로 식별력이 부족하다면, 도형이 결합된 형태로는 등록이 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이때 보호 범위는 그 결합 형태에 한정되므로, 문자상표 확보를 포기하는 대안이 아니라 병행 전략으로 가져가셔야 합니다.
■ 참고자료
· 판결 : 유럽연합 일반법원 2026. 7. 15. 선고, OpenAI v EUIPO, Case T-555/25 (제8부)
· 해설 : 「When OPENAI Describes Rather Than Distinguishes」 · Arochi & Lindner IP Shots · 「OpenAI Denied EU Trademark」
· 관련 보도 : OpenAI Loses EU Trademark Court Challenge Over Its Own Name
· 관련 선례 : BABY-DRY (C-383/99, 2001) · DOUBLEMINT (C-191/01 P, 2003)
· 국내 근거 : 상표법 제33조 제1항 제3호(성질 표시), 같은 조 제2항(사용에 의한 식별력)
정리하며
이 판결의 핵심은 ‘오픈에이아이가 졌다’가 아닙니다. 설명적인 말은 모두의 것이며, 어떤 기업도 시장이 필요로 하는 언어를 독점할 수 없다는 상표법의 오래된 원칙이 다시 확인된 것입니다.
새 사업의 이름을 지으실 때는 ‘이 이름이 우리 상품을 잘 설명하는가’보다 ‘이 이름이 우리 회사만을 가리키는가’를 먼저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조금 낯설고 뜻이 비어 있는 이름이 오히려 가장 강한 상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브랜드를 세상에 내놓기 전에 출원 가능성 검토를 함께 진행하시길 당부드립니다. 이름을 바꾸는 비용은 초기에는 거의 들지 않지만, 시장에 자리 잡은 뒤에는 회사의 자산 전체를 흔드는 일이 됩니다.
사랑특허법률사무소
박소현 대표변리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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